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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모으기 운동
국채보상운동금모으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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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모으기 운동 배경

대구 금모으기운동 태동배경

  • 1997년 11월 21일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이어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대량실직사태 발생 등으로 인해 생계가 막연한 가정에서 가족이 집단 자살하는 사건이 대구에서 빈발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가중됨
  • 이에 따라 민관협력의 시민운동 네트워크인 대구사랑운동시민회(우리나라 최초로 설립한 민·관 협력의 시민운동 협의체)를 중심으로 “제2국채보상운동”의 필요성이 제기됨
  • 특히 당시 문화예술과에서 담당하던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 업무가 대구사랑운동을 추진하던 자치행정과로 이관됨에 따라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에 대한 재조명 사업과 함께 금모으기운동을 범시민운동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과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었음
  • 이를 바탕으로 대구시와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에서는 제2국채보상운동 차원에서 금모으기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키로 하고, 1997년 12월 하순경에 “1998년 1월 8일 기관·단체장 간담회 개최”를 통보한 상황에서, 대구 남구에 소재한“한울정신문화원”에서 1997년 12월 28일 금모으기운동을 추진하여 당일 금 8㎏(약 1억5천만원 상당)을 모으기도 하였음

금모으기운동 추진경과

  • 1997년 11월 25일 대구시청 대강당에서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 주관으로 130여개 회원단체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기관·단체장 결의대회”를 개최하였음
  • 1997년 12월 23일 대구사랑운동 평가보고회 겸 총회를 통해 “금모으기운동”을 추진하기로 결의하고, 각급기관·단체에 간담회 참석을 협조요청 함
  • 그리고, 1998년 1월 6일부터 대구시청 민원실에 금모으기운동 접수창구를 개설한데 이어, 1998년 1월 8일 대구시청 대강당에서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 주관으로 160여명의 기관·단체장이 참석한 가운데 “장롱속 금모으기 운동 기관·단체장 결의대회"를 개최하였으며, 결의대회 당일 보석업체의 협조를 받아 기관·단체장이 준비해온 금반지 등을 감정 받아 위탁하는 등 금모으기운동을 시작함
  • 이후 대구은행 등 각급 금융기관에서 금모으기 접수창구를 개설하는 등 본격적인 국민운동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됨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

  • 외환위기 징조를 일반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행정안전부(당시 내무부)에서 1997년 4월부터 10월까지 국민운동단체 등을 통해 경제살리기 저축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대구시가 전국1위(상사업비 20억원 수상)를 달성하였음
  • 1998년 5월 18일. IMF외환위기 여파로 급속도로 늘어나는 어려운 이웃을 지원하기 위해 대구시청 민원실에 “이웃사랑창구”를 전국 최초로 개설하였음 이웃사랑창구는 갑작스러운 실직 등으로 생계가 어려운 가정에 대해 서류증명 없이 사회복지사나 이웃주민의 확인만으로 소정의 생계비와 무료치료, 쌀 무상공급, 취업알선 등의 서비스를 지원(독지가, 병원, 종교단체 등)하는 창구로서 2018년말까지 총 3,464명에게 9억9,800만원의 생계비와 쌀 439포, 무료치료 등을 지원하였음. 당시에 설치한 이웃사랑창구는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으며, 대구적십자사 직원이 시청에 상주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접수받아 지원하였음
  • 1998년 5월 30일. 동구 공산동 일대 유휴농지(3,300㎡)를 무상으로 임대받아 실직자 70명에게 IMF 텃밭을 무상으로 분양하였으며, 대구 제일교회에서 비료와 씨앗 구입비 등을 지원하였음
  • 1998년 7월 18일 두류공원 문화예술회관 앞 차단도로(2,310㎡)에 민·관협력 방식의 토요알뜰장터를 전국 최초로 개설하여 매주 운영(매주 2~3만명 정도 이용)하였으며, 여기에는 대구 YWCA, 새마을부녀회, 적십자사대구지사, 대구사회복지협의회, 한국자원환경개발협회 등 5개단체가 주관하고, 월남참전군인회, 영남대, 대경대, 경북과학대 등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전개하였음
  • 토요알뜰장터는 IMF 외환위기로 인해 파산한 업체의 재고물품이나 각 가정이나 직장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품(양복, 헌옷, 장난감, 가전제품, 가구, 학용품, 도서 등)을 물물교환 또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였으며, 가전3사에서 가전제품 무상수리, 종합복지회관 직업훈련생의 옷 무료수선 봉사, 지방 예술단체의 공연 등 다양한 재활용 축제의 장으로 발전하였음
  • 그 외에도 대구시와 새마을운동 대구지부, 지역 언론사 공동주관으로 고철모으기 운동을 전개하였고, 총 20만5천 여명이 참여하여 13,311톤의 고철을 모았으며, 대구상공회의소와 매일신문사는 경제살리기운동의 일환으로 국채보상운동 통장개설과 함께 금모으기운동과 함께 경제살리기 실천요강 공모와 서명운동을 전개하였음
  •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에서는 1998년도 대구사랑운동 추진방향으로 “신 국채보상운동으로 재 점화”를 정하고, 선도과제로 “금 및 고철 모으기운동”을 범시민운동으로 추진하였음
  • 특히 대구시와 대구상공회의소, 지역대학교에서는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기념사업준비위원회 구성(대구시), 국채보상운동사 발간(대구상공회의소), 국채보상운동 기념비 건립(대구상공회의소), 기념식 및 국제심포지엄을 개최(대구시, 대학교 등) 하였음. 또한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에서는 사회 저명인사를 매달 초빙, 시민아카데미를 통해 제2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전파하였고, 각급기관·단체와 금융기관에서는 “나라사랑 금 및 고철 모으기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대구은행과 대구상공회의소에서는 신 국채보상운동의 일환으로 “국채보상운동 통장”을 발매하는 등 다양한 제2국채보상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창립

1997년 6월
국채보상운동사 발간(2천부), 학교 및 도서관 등 배부
1997년 7월
대구시에서 국채보상운동 90주년 기념식 최초 개최
1997년 10월
대구상공회의소에서 국채보상운동 기념비 건립
1997년 10월 16일
대구시, 시의회, 대구상공회의소 주관으로 각계인사 600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채보상운동 백주년 기념사업회 창립
1997년 10월 17일
국채보상운동 국제심포지엄 개최
1999년
중구청과 지방경찰청, 공무원교육원이 있던 자리의 건물과 담장을 허물고 국채보상기념공원 조성
2001년 2월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창립

성공요인

  • 국채보상운동 등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 마다 국난극복에 앞장섰던 올곧은 대구정신을 계승(국채보상운동, 228민주의거 등)
  • 1996년 전국 최초로 민관협력의 시민운동인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를 창립(135개 기관단체 참여)함으로써 주요 이슈발생시 신속한 의사결정과 범시민적 추진체제 및 탄탄한 시민운동 노하우를 갖추고 있었음 ※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는 나중에 부산사랑, 대전사랑, 구미사랑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김대중 정부의“제2건국운동”의 모델이 되었음
  • 135개 기관단체가 실무자회의(연1회), 실무위원회(매월), 상임위원회(분기별), 총회(연1회)와 평가보고회 및 다양한 실천과제를 공동으로 수립하고, 상호 역할분담을 통한 민·관 협치를 실현하였음

국채보상운동과 금모으기운동의 연관성

유사점

  • 외국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전국최초로 범국민운동을 펼쳤다는 점
  • 대구에서 처음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점
  • 관의 주도가 아닌 민간의 자발적인 기획과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
  • 언론사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가 있었다는 점
  • 금 외에도 다양한 물자절약운동(모으기 운동) 전개하였다는 점
    ※ 국채보상운동 : 금연, 절미, 패물, 장신구, 은반지 등 금모으기운동 : 금, 은, 고철, 저축운동 등
  • 국난극복을 위한 범국민적 역량결집과 애국심 고취의 계기가 됨
  • 실제 외채를 갚을 정도의 모금성과는 달성하지 못하였다는 점
  • 부정적인 여론보다는 긍정적인 여론이 대세를 이루었다는 점 등

차이점

국채보상운동
- 민간 중심 운동
- 일본에 진 빚 갚기
- 국권 회복운동(자주자강)
- 기부 성격
- 대구에 민의소 설치, 전국적으로 70여개의 보상소 설치 - 고위층 및 정부관료 참여 미흡
- 일제 통제시대
- 미디어 미 발달(전파속도 느림)
- 여성의 주도적 참여(선도)
금모으기운동
- 민·관 협력 운동
- IMF 구제금융 갚기
- 국가 명예회복 운동 * 기업 분식회계 경종 등 부패척결 계기
- 대가 지불
- 금융기관을 통해 접수
- 모든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 미디어 발달(전파속도 빠름)
- 성별과 연령 구별 없이 참여

국민운동의 정량적 성과

  •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230만원 정도를 모금함으로써 목표액(1,300만원)의 17.6%를 달성함
  • 금모으기운동을 통해 약 349만 명(전체인구의 13.3%)이 참여하였으며, 약 225톤(21억7천만달러)의 금을 모음으로써 목표액(250억 달러)의 8.7%를 달성함
  • 대구지역의 금모으기운동 성과는 약 10만3천명이 참여한 가운데 12톤 452㎏의 금을 모았음
  • 특히 대구 서문교회(담임목사 이상민)에서는 교인들이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되살릴 것을 결의하고, 140돈의 금(반지, 목걸이, 귀고리, 팔찌, 작은 두꺼비, 메달 등)을 모아 대구사랑운동지원기금으로 헌납하였음
[ 참고문헌 ]
대구시, 주요 업무계획, 2018년~2019년
박 건, 집합기억의 사회적 구성에 관한 연구, 2007년
천혜성, IMF 외환위기 기억의 사회적 구성, 2017년
대구시, 대구지역 國債報償運動考, 1988년
대구시, 대구의 향기(국채보상운동 편), 1982년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 대구사랑운동 성과와 다짐, 1996년~1998년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 대구사랑운동 추진계획, 1996년~1998년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 언론에 비친 대구사랑운동, 1997년~1998년
기타 언론보도자료, 웹자료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