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기성회 취지서
대저 무엇을 빚이라고 합니까? 크게 사업을 하고 재산을 불려서 백성을 이롭게 하고 나라를 흥하게 할 만한 것이 눈앞에 있는데, 만약 재화(財貨)와 기용(器用)이 자신에게 없으면 반드시 남에게 빌려서 그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진실로 마땅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만약 이것을 바른 길이라 여겨 그칠 줄 모르고 한 번 빌리고 두 번 빌리다보면 나라의 형세가 어떠한 상황에까지 이르겠습니까? 예전에 영국·프랑스가 애급(埃及, 이집트)에 돈을 빌려 줄 때 애초부터 이집트에 재앙을 주려고 한 것이겠습니까? 다만 빚을 얻은 이들의 일처리가 옳지 못하여 남의 나라 땅이 되었습니다. 대저 국민 된 자들이 만약 남은 돈을 내어 위로는 국가의 필요한 것에 부응하고 아래로는 국민들의 부강(富强)을 이루게 한다면, 또한 무엇이 좋다고 우리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을 버리고 남에게 돈을 빌리려 하겠습니까? 지난번 우리정부가 발전에 성급하여 빌린 외채가 1,300만 원에 이릅니다. 그 마음에, “이것을 밑천삼아 국가의 대사업을 일으키겠다.”고 어찌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우리 2천만 국민들이 가령 한 사람이 1원씩 낸다면 2,000만 원이 될 것이고, 만약 오십 전씩 낸다면 1천만 원이 될 것이니, 이렇게 하여 남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의연금을 내는 방법이, 원하는 액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한 번에 내겠다는 사람은 편한 대로 하는 것은 참으로 말할 것도 없고, 그 나머지는 곧 달이나 분기로 나누어 매번 5전 10전 등 차이가 있더라도 마지막에는 나의 역량대로 내고 마친다면 어찌 묘하고도 쉬운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본인 등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진실로 여러 날이 되었는데, 지금 다행히 영남의 동래(東萊, 부산)와 대구(大邱) 등지의 여러 군자(君子)들이 단연보상(斷煙報償)의 논의를 내어서 발기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아 의연금(義捐金)을 내는 사람들이 날마다 이르니, 우리 백성들이 자기 집처럼 나라를 사랑하고 강토를 보존하고 종족을 보존하는 훌륭한 마음을 볼 수 있겠습니다. 만약 이미 금연(禁煙)을 하였다고 말한다면 우리 땅에서 나는 담배조차도 오히려 경계하여야 하는데, 하물며 수만 리 떨어진 애급(埃及, 이집트)과 여송(呂宋, 필리핀) 등의 비싼 담배와 맛이 떨어지는 청연(淸烟, 중국담배)과 같은 것은 어떠하겠습니까? 또 의연금을 내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사정과 재력이 다르고 빈부 또한 격차가 심하니, 말에는 천 근(斤)을 실을 수 있지만 개미는 좁쌀 한 알을 짊어질 수 있다는 것이 또한 같은 이치입니다. 예전,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 수백만, 수십만 원을 내는 사람도 있고, 또한 놋숟가락 하나를 낸 사람도 있었습니다. 놋숟가락이라고 하는 것이 수백만 원과 많고 적고 가볍고 무거운 것을 비교한다면 진실로 어떠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공(公)을 받들고 나라를 바로세우는 마음은 한 가지입니다. 이에 저희들이 멀리 동래(東萊, 부산)와 대구(大邱) 등의 여러 분들과 함께 하나로 뭉쳐 이 회(會)를 조직하여 ‘국채보상기성회(國債報償期成會)’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에 우리 동포들에게 널리 알려 우리 국민들의 의무를 다하기를 바라니, 아! 나라가 망하면 국민도 망하니, 힘씁시다. 우리 동포들이여! 또 얼마의 때를 기다려 나라의 모든 빚을 갚은 뒤에, 세계 제일의 향기롭고 아름다운 담배 수천만 개비를 사서, 온 국민 남녀노소가 바람결에 담배 한번 피면서 우리의 맑은 흥을 풀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一. 본회(本會)는 일본에 대하여 국채 1,300만 원을 보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一. 보상 방법은 일반 국민의 의연금(義捐金)을 모집함. 단 금액은 많고 적음에 구애받지 않음. 一. 본회(本會)에 의연금을 납부한 사람은 본회의 회원으로 인정하고, 성명과 금액을 신문에 공고함. 一. 본회와 목적이 같은 각 단체는 서로 연합하여 목적을 이룰 것을 힘써 도모함. 一. 의연금은 모아서 위의 금액에 이르기까지 믿을 만한 우리나라의 은행에 맡겨둠. 다만 수합된 돈은 매월 말에 신문에 공고함. 一. 본회는 목적을 달성한 뒤에 해산함. 광무 11년(1907) 2월 22일 발기인 김성희, 유문상, 이필상, 김주병, 오영근, 최병옥, 김상만, 임봉래, 안국선, 윤병승, 윤태영, 윤천구, 박태서, 송기윤, 현공렴, 김대희, 김동규, 이승교, 신해용, 최병진, 한진용, 이상익, 주한영, 고유상 수전소(收錢所)는 아래와 같습니다. 중서(中署) 전동 12통 1호, 보성관(普成館) 안 야뢰보관(夜雷報館) 임시사무소. 중서(中署) 포병(布屛) 아래 광학서관(廣學書館) 김상만(金相萬). 남대문(南大門) 밖 도동(桃洞) 건재약국(乾材藥局) 유한모(劉漢謨). 서서(西署) 석정동(石井洞) 대한매일신보사(大韓每日申報社). 남대문(南大門) 안 상동(尙洞) 청년학원사무소(靑年學院事務所). 남서(南署) 대광교(大廣橋) 37통 4호서포 고유상(高裕相). 중서(中署) 파조교(罷朝橋) 건너편 중앙서포 주한영(朱翰榮). |